중간선거와 기말페이퍼
 laopassana  | 2010·11·03 11:24 | HIT : 2,189 | VOTE : 157 |
미국 중간선거일이라 그런지 담당 교수가 대학원 수업을 평소보다 한 시간 정도 앞당겨 끝냈다. 오후 늦게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엔 언제나 저녁을 8시가 넘어서야 먹었더랬는데 오늘 만큼은 7시를 전후로 먹게 돼 일단, 아주 단순하게 들릴 테지만, 기분이 아주 좋았다. 개표방송을 틀어놓고 걸신들린 듯 밥 한 공기를 후딱 비우고 나니 그제서야 텔레비젼이 시끄럽게 말을 걸기 시작한다, 개표가 완전히 종료되어야 분명해지겠지만, 예상대로 공화당에서 민주당 의석을 상당히 되찾아 오는 중에 있어 아마도 하원에서는 여소야대가 될 것이라고.

공화당의 우세도 우세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차기 대권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미스 알래스카주 출신 무개념 정당인 사라 팰린과 더불어, 보수정당 '티 파티'의 돌풍이다. 뭐, 머지 않아 공화당으로 고스란히 흡수되겠지만, 상당수의 미국인들이 이 바람처럼 등장한 신흥 보수정당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긴 하지만, 좀 재미나기도 하고 한편으로 한심하기도 하다.

정당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미국독립전쟁의 중요한 도화선이 된 '보스턴 차 사건'을 전후로 한 미국혁명의 정신으로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자는 것이 이른바 '티 파티' 정당이념이다. 이들이 진단하고 있는 현재 미국사회의 위기는 오바마와 민주당이 추진해오고 있는 건보개혁과 세제개편 두 가지 진보적 아젠다를 말하고, 이들이 내세우고 있는 슬로건은 '좋았던 옛날'로--아주 오래 전 독립선언 시절 그리고 불과 몇 년전 부시 행정부 시절로 되돌아가자는 말.

말 그대로 공공의료 개념 자체가 없는 미국에서, 그리고 불과 2년 전 대공황에 버금가는 금융위기를 겪은 이곳 미국에서 건보개혁안과 세금인상안에 대해 이렇게 빠른 시간 안에 등을 돌리고 야유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우방끼리는 닮아간다고 했던가, 어디서 많이 듣고 보던 시츄에이션이다. 정부의 불필요한 통제 및 간섭과 공공적 효능 사이의 차이점을 보려 하지 않는 '그들'은 국적불문하고 강한 생존력과 전투력이 특징인 듯하다.

'멕케인주'로 불리는 여기 인디애나주 역시 공화당 완승분위기라 기분이 별로 좋지 않을 뻔하다가, 선거구별로 살펴보니 퍼듀대학이 있는 선거구와 인접 선거구 두 곳에서는, 그러니까 인디애나주 최북단에 위치해 시카고와 가장 가까운 선거구 두 곳은 상당한 표차로 민주당이 의석을 차지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왜인지는 모르지만, 안도의 한숨.    

암튼 중간선거 개표방송을 보고 있으니 코앞에 닥친 기말페이퍼 제출에 가슴이 먹먹해지고 호흡이 가빠진다. 마감기한 연장 협상에 들어가야 할지도 고민이고, 다음학기 수업 등록과 티칭과목 시간 조정에도 들어가야 하고 학생들 과제물 채점해서 돌려줘야 하는데 너무너무 하기 싫고...갈수록 태산이다.

아름다운 옛말, 망중한을 현대적으로 실천하기 위해 오늘은 사서연구관에게 도서관탐방안내를 부탁하고 , 목요일 수업은 전문가에게 소프트웨어 강의를 맡기고 금요일 수업은 휴강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듣는 수업에 입을 치명적 타격을 피하고자 내린 다소 속보이는 스케쥴이지만 어쩔 수 없다. 학생으로서도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지라...

최근 들어 티칭이나 다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외부기관이나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재정으로 순수하게 수업만 듣고 자기연구에만 몰두하고 있는 내외국인 박사과정 학생을 두명이나 알게 됐다. 새로운 동료를 만나게 돼 반가운 일이긴 하지만, 결국 뇌리를 채우는 지배적인 반응은, "아이씨, 진짜진짜진짜 부럽다."

finching 그러게요. full-time으로 공부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 저도 많이 해봤습니다. 따지고 보니 수업 듣고 공부만 하는 생활이 석사 과정으로 끝나버려 탈이죠. 그러나 어떻게 보면 평생 먹고 사는 일 하면서 part time으로 공부해야 하는 처지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 그게 그냥 기본 조건이라고 생각하는 수밖에요. 기말 일정 무사히 잘 넘기시길.^^

10·11·03 12:06 삭제

laopassana 네, 저는 다른 사람보다 석사 과정을 한 번 더 수료하면서 수업 듣고 공부만 하는 생활을 좀 더 해봤으니 궁시렁댈 자격도 없는 것같네요.^^ 나이도 얼추 찬 관계로 평생(?!) 직업이라 말하기도 뭣하지만, 일반 회사원들처럼 '경력' 쌓는다고 여기고 열심히, 아니 적당히(?) 일해야죠. 박봉이긴 하지만 밥줄인데 관리 잘 해야 함은 두말하면 잔소리죠!^^;;;

10·11·0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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