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복귀, 그리고 일상
 laopassana  | 2009·01·23 01:57 | HIT : 3,028 | VOTE : 178 |
미국시간으로 화요일 두 남자가 자신들이 얼마간 바라왔던 그들만의 공간으로 들어섰다. 첫 흑인계 미국대통령 오바마는 워싱턴 백악관에 입성했고, 내 방짝 호세는 개강에 맞춰 고향 텍사스를 떠나 이곳 뉴욕 빙햄튼으로 돌아왔다.

너무나도 자유롭게 지냈던 지난 한 달은 당분간 다시 오기 힘들 것이고 다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약간의 긴장 속에서 생활하게 될 것이다. 상당히 늘어져 있던 내게 그의 복귀는 반가운 소식이다. 조만간 지난 학기와 마찬가지로 학교에 있는 시간이 많아질 것이며 또한 어느샌가 규칙적인 생활이 반복될 것도 확실하다.

오바마 취임식이 있는 날 저녁 쯤 돌아온다는 연락을 받고 얼마 전부터 이날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방짝의 귀환을 환영하거나 축하하는 그런 종류의 특별한 계획이 아닌, 단지 이제껏 한 번도 구경해 본 적이 없는 미국 대통령 취임식 중계를 보기 위해 하루를 제대로 집에서 뭉개주시자는 데에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멍하니 중계만 지켜볼 수는 없을 테니, 새학기 맞이 대청소는... 너무 힘드니 말고, 간이청소 비스무리한 것을 하며 시청하는 것이 나쁘지 않을 듯싶었다.

당일 새벽녘 간만에 꿈을 하나 꿨는데, 재미나고 특이하게도 오바마가 등장하는 꿈이었다. 섭외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그런지 실제 얼굴은 내비치지 않았지만 동일공간 동시간대에 실명으로 분명이 등장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는데, 꿈 속에서 나는 오바마 취임식 당일 미국 어디에선가 감금을 당해 있는 상황이었고 하이라이트는  날 감금한 누군가가 내게 또렷한 영어로 "오바마가 총격으로 숨졌다"(Obama was shot) 라고 말하는 부분이었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그 뒤로 무어라고 연신 중얼거리며 그곳을 빠져나가려 안간힘을 쓴다는 것이 이어지는 내용이고, 용두사미마냥 싱겁긴 하지만, 기억나는 부분은 여기까지다. 그러고 보니,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꾼 영어꿈이다..너무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암튼간 웃긴다, 웃겨.

내 꿈과는 달리 실제 오바마는 엄청난 환영인파가 몰려든 워싱턴에서 무사히 취임식을 치를 수 있었다.

나는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초기 후보 경선에서부터 당선에 이르기까지 여러 곡절이 있긴 했지만, 타고난 언변에 넘치는 자신감, 그리고 젊고 잘 생긴 외양을 지닌 오바마는, 두 번의 재임기간 동안 전쟁과 밀실정치로 국수 먹듯 훌훌 다 말아먹어버린 어리버리 부시가 없었더라도, 또는 흑인계라는 인종적 변별점이 없었다 하더라도 충분히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물론 그의 사자후와 백만불짜리 자신감과 기개의 상당 부분이 흑인의 피가 흐르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깊은 고민으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하긴 하지만 혈통과 배경을 다 떼고 개인적인 자질만 놓고 봐도 뒤질 것이 없는 인물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많은 미국인들이 그를 좋아하는, 또는 좋아했던 이유는 아마도, "젊은 미국"에 대한 국가적 전통(환상)에 뿌리를 두고 있지 않나 싶다. 물리적 나이를 들어 이야기하자면, 유독 미국에서 젊은 대통령이 많이 나온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건국 초기에 많은 미국 작가들과 지식인들이 참여했던 The Young American Movement 를 봐도 그렇고, 새로움과 젊음을 상징으로 하는 무언가를 찾기 위해 유럽을 등지고 뛰쳐나와/온 사람들이 모이게 된 곳이 미국대륙임을 상기한다면, 미국인들의 '영계선호사상'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가 될 법도 하다.

어쨌거나 취임식을 보며 느꼈던 것은 취임식 생중계를 참 오래도 보여준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때도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취임식 전후 광경은 물론이고 전임 대통령이 고향 텍사스로 떠나는 모습이며, 취임한 신임 대통령의 오찬 풍경과 이후 백악관 입성 경로, 행진하는 광경도 모자라, 그날 밤 워싱턴 곳곳에서 열린 다양한 파티에 참석한 대통령 내외를 줄기차게 중계해 주는 광경은 사뭇 흥미로웠다. 오찬 리셉션 장에 신임 대통령을 축하(해주러 왔는지 보신을 위한 로비였는지 알 길 없지만)하는 듯보이는 공화당의 멕케인 의원의 모습과 백악관으로 뻗어 있는 큰 인도를 가득 메우고 연호하는 시민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오바마의 모습 까지는 신선하고 좋아보였는데, 이후 이어지는 다소 비슷하고 뻔한 형식이 반복되는 대규모 파티 중계에 이르러서는 살짝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었다.

파티에 실상 초대되어 마이크를 쥐고 발언권을 얻게 된 사람들의 면면을 보면 전부 유명한 가수 아니면 배우였는데, 좀 더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이 등장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라는 아쉬움이 들었고, 이와 동시에 곰곰이 생각해보니, 진짜 서민 노동자들은 아마도 그 시간에 열심히 일을 하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조금 씁쓸해지기도 했다.

사실 오바마가 밀고 나갈 정책의 중심과 방향들이 과연 어느 쪽을 향하고 있는가하는 점을 찬찬히 살펴보면 아주 왼쪽이나 아주 아래쪽을 향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기본적으로 부시와는 가능한한 다른 방향으로 대개의 정책이 입안되고 집행될 것이라고들 하지만, 취임사에서도 밝혔듯 인종이나 성별, 문화권 간의 갈등과 대립보다는 화해와 협력을 강조하고 있긴 하지만, 취임식에서의 기도와 설교가 엄존해 있고 선서 또한 성경에 손을 얹고 행해지는 기독교 우선 국가주의가 빚어온, 또한 빚어낼 미국내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소수자들에 대한 묵시적 차별과 장벽은 크리스찬인 오바마로서는 넘기 힘든, 넘어설 필요성을 못 느낄 수도 있는 장벽이 될 수도 있을 것같아 조금 걱정이 되기도 한다. 여러 학자들이 지적하는 미국의 특이한 제정일치(종교와 정치가 결합된 형태로 고대 문명에서 보이는 정교일치가 미국에서는 여전히 기독교와 민주주의의 결혼으로 변형되어 발전해왔다는 의미에서 "Theocracy" 라는 용어가 공공연하게 쓰인다)는 특별한 미국만을 원하는 미국민의 입장에서 보자면 말 그대로 신의 축복일 테지만, 여러 국가의 이해관계과 맞물리고 얽혀있으며 다양한 종교와 문명이 상호공존해야 할 지구촌의 입장에서 본다면, 이는 분명 미국의 태생적인 한계이자 언젠가는 반드시 넘어서야 할 중요한 고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다소 화려하고 소란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취임식 당일을 뒤로 하고, 이제 대선 공약의 하나였던 미국에 의해 운용되고 있는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 및 국내외 도처에 산재한 비밀 수용소 폐쇄를 자신의 첫 공식업무로 진행시키고 있는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기대와 바람을 가져보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임을 인정하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비롯된 그의 바람직한 열정이 어디까지 다다들지 찬찬히 지켜봐야겠다. 대내외적으로 가장 힘든 시기에 대권을 거머 쥐게 돼 조금은 안쓰러워보이기까지 하지만, 어쩌겠나 그것이 그에게 부여된 짐이자 사명인 것을. 기록적인 투표율에 이은 비교적 큰 표차로 당선되었긴 하지만, 여전히 절반에 가까운 미국민들이 공화당을 지지하고 있으며 주류 백인 기독교인들만 잘 먹고 잘 살길 희망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오바마의 의욕적인 첫 공식행보를 보고 있자니, 작년 이맘 때 취임 초기 이명박의 모습과 최근까지 이어진 만행들이 교차되며 묘한 한숨이 섞여 나온다. 어이쿠우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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