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자회담
 laopassana  | 2008·01·14 09:45 | HIT : 6,735 | VOTE : 261 |


낯설고 물선 미국이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공간에서 수업을 들으며 가장 놀라웠던 점 중의 하나는 교수와 학생 사이의 관계였다. 교수를 지칭하고 대하는 말이나 태도 자체가 하나의 특정 규범으로 굳어져 다소 경직되고 엄숙한 한국과는 달리, 대개의 경우 미국 학생들은 교수를 위계의 망이 아닌 수평적인 입장에서 바라보고 행동하고 있는 듯했다. 교수들 역시 그런 입장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기본적으로 이 차이가 아주 쉽게 드러나는 부분은, 이미 짐작하듯, 이들이 사용하는 언어에 있었다.

많은 경우 학생들은 교수를 가리키는 말로 단순명료한 2인칭 대명사, 'you'를 즐겨 사용한다. 물론 말머리에서나 중간중간 ‘professor,’ ‘Dr.,’ ‘sir’ 등의 존칭을 사용하긴 하지만 대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계급장 떼고 개인 대 개인이 주고받는 편안하고 친숙한 대화로 보일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순화시켜 말하자면, 학생들은 자신들보다 특정분야에 대해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가지고 있을 교수들에게 자신들이 필요한 것을 얻고자 하며, 궁금한 것들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비슷한 맥락에서 교수는 학생들에게 어지간하면 그들이 바라는 것들에 대해 만족시켜주고자 기꺼이 답변을 해주고 대화를 이어나간다.

학생과 교수 사이에 존재하는 이러한 '거리낌 없음'이 다소 놀라운 점이었는데, 이 거리낌 없는 관계에 생소할 수밖에 없는 내게 어느 날 좀 놀랍기도 하고 생뚱맞은 제안이 들어오게 된다. 첫 학기 대학원 수업을 듣고 있는 내게 담당교수가 따로 시간을 내어 일주일에 한번씩 대화를 나누자는 것이었다. 오케이 사인을 보낸 후, 대화의 구성원이 나 혼자만이 아니라 거기엔 2명의 외국학생이 더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같은 수업을 듣는 '동양인' 학생들이었다.

담당교수의 수업은 영문과 대학원에 개설된 [Political Discourse]라는 과목으로, 주로 미국 국내외 현실 정치와 관련된 이슈를 최신 현대 정치문화 이론을 통해 반성적으로 고찰하는 수업이었다. 9/11, 이라크전, 관타나모 수용소, 미국 이민법 개정, 파키스탄의 비상계엄령에 이르기까지 다뤄지는 이슈는 다양하였고 이를 사이드, 료따르, 푸코, 아감벤 등의 이론과 연계하여 살펴보는, 나로서는 아주 흥미로운 수업일 수밖에 없었는데, 난감한 문제가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수업 진행 방식이었다.

대학원 수업이라 어느 정도 예상을 하긴 했지만 이 수업은 그 자유로움의 정도에 있어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었다. 담당교수가 수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나 발언권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다른 수업과 비교해 봤을 때, 이 수업의 세미나는 담당 교수 또한 토론의 일원 정도로 종종 내비칠 정도로 너무도 격의없이 신속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이렇다 보니 나와 같은 이방인들, 이런 자유토론 문화에도 익숙하지 않고 더욱이 기술적으로 그들의 언어를 따라갈 수 없는 외국인 학생들은 어느새 자연스럽게 ‘패널’의 위치로 전락하게 되고 만 것이다. 여기라고 말의 속사포를 구사하는 사람이 없을 리 없겠지만, 실제로 미국의 진중권이나 최재천, 유시민 등을 접하고 보니 엄두가 안 나 넋 놓고 구경하게 되는 것이 사실이었다. 또한 화제가 줄곧 그들 미국의 이야기이기에, 그들이 항시 사용하는 'we' 와 'our' 라는 대명사 또한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도 사실.

벙어리처럼 앉아있는 모습을 견딜 수가 없어 몇 번 준비해간 말을 초반에 냅다 내던지고 이후 침묵은 금이다, 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했던 나나 수업 내내 한마디도 하지 않는 다른 두 학생들 모두 세미나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기란 너무도 힘든 일이었던 것이다.

이런저런 사정을 눈여겨 보셨는지 혹은 딱하게 여기셨는지 담당교수는 나를 비롯한 이방인들을 불러 자신의 연구실에서 수업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어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을 하신 것이다. 현재 영문과 학과장 보직을 병행하고 있으므로 시간이 그리 넉넉치 않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일주일에 한 시간씩 그야말로 ‘거리낌 없는’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로 결정을 내리시게 된 것이다.

이제부터 교수를 포함한 4명은 대화를 나누게 되는데, 그 화제란 다름아닌 수업의 연장선이기도 했으며 교수의 관심사와 맞닿아 있는 것이기도 하여 상당히 ‘정치적’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으며 본의 아니게 각자는 자신이 속한 국적을 대표하여 발언을 하게 되는 다소 외교적인 대화의 성격을 띄게 되었다. 미국인 교수와 일본인 학생 그리고 한국인 학생 둘로 이루어진 4자회담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전공분야와 관심사로 보자면 교수는 이쪽에서는 충분히 ‘래디컬’하다고 여겨질 성향을 지닌 분이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상당히 자유분방하고 진보적인 캘리포니아 출신으로 그곳에서 학위를 받고 동부로 건너온 학자이기도 했고, 이번 학기 내내 강의실에서 현재 부시정부에 대한 비판의 칼날을 서슴없이 휘두르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었다. 베트남전 때보다 지금 상황은 더욱 암담하다는 발언을, 어쩌면 최악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언급을 반복하셨던 것도 기억이 난다.

그분의 주재로 대화는 주로 미국이 벌이는 대외정책에 대한 외국학생들이 속한 나라의 반응을 묻는 것으로 시작되었는데, 워낙에 한미일의 관계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에 많은 이야기가 오갈 수밖에 없는 사안들이었다. 예를 들면, 미국의 이라크전 파병 요청에 대한 한국과 일본 정부의 입장 및 국민들의 반응, 각국이 국민들에게 강조해왔던 이념 및 가치체계들, 대학교육에서 비평이 갖는 의미나 자위대, 한반도 분단의 문제 등등 하나같이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답변 듣기를 바라시는 것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이미 상당히 조심스럽게 대화에 참여하던 나는 그보다 조금은 더 당황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것은 같은 한국학생의 입장이었다.

같이 공부를 하게 된 동기라는 신분과 한국이 고향이라는 국적만 같을 뿐, 다소 민감한 정치적 이슈, 특히나 한국과 관련된 부분들, 이를 테면 분단이나 통일의 문제, 그리고 현실 혹은 미래 정치에 대한 입장이 사뭇(!) 달라 분위기가 묘하게 전개되고 만 것이다.

물론 나는 오래 전부터 우리 나라에서 주요한 가치로 여겨져 온 강력한 반공이데올로기 바탕의 교육과 선진 자유주의 물결의 파고를 잘 알고 있었다. 최근의 비정치적이고 ‘무’정치적인 젊은(?) 학생들의 분위기도 모르는 바 아니었다. 그러나 막상 이런 예상치 못한 공간에서, 그것도 미국인 앞에서 그 ‘현상’과 실제로 마주앉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여러 당황스러운 감정이 복합적으로 얽히게 되고 만 것이다. 물론 교수는 두 한국 학생의 의견을 모두 신중하게, 기꺼운 마음으로 경청해주고 인정해 주었지만, 약간은 혼란스러워 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 학생이 반공주의와 신자유주의에 기대어 발언을 하는 동안 나는 또 본의 아니게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고 마는 듯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정말로 어찌 보면 이것이 ‘4자’회담이 될 수도 있겠거니 하며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흔히 말하듯, 한국 사람들이 보수, 중도, 진보로 나뉠 수 있다면, 그 세 입장을 모두 다루어야 옳을 것이다. 이것이 외국인과 주고받는 대화라면 말이다. 의견과 사실은 분명 다른 차원인데, 의견을 사실처럼 전달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참 ‘거시기’한 일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그 학생만을 원망할 일은 아니었다. 상황이 이국 땅이라 그렇지 그 학생 또한 분명한 한국사회의 일원이고 한국의 교육제도와 가치관이 길러낸 실제 한국인이니 말이다. 그 학생의 의견은 의견대로, 나의 입장은 입장대로 펼치고 주장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또 한편으로는 대화에서 내 나름의 역할을 찾아가기 시작하며 이 상황은 담담하게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 교수가 잘 모르거나 간과하고 있던, 혹은 아예 모르고 있는 ‘사실’들에 대해 내게 발언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우리나라에 대한 오해를 조금이나마 줄임은 물론이거니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자리가 아니었더라면 구한말 일본의 국권침탈을 시작으로, 좌우대립이 한창일 수밖에 없었던 해방과 분단 이후 한국사회, 5월 광주와 직선제 개헌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 이르기까지 한국사에서 굵직하고도 중요한 장면을 보여주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기술적으로 좀더 명료하고 정연한 언어를 구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긴 하지만, 그분은 고마워하며 경청해주시고 고개를 끄덕여 주셨다.

‘애국’이라는 것이 무엇이며 과연 존재하는지, 또 ‘애국하는 길’이 무엇인지도 잘은 모르겠으나, 이것이 ‘애국’하는 길의 하나라면, 정말 이런 식으로, 이런 모양새로, 그야말로 느닷없이 애국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별의별 것을 다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 별의별 일을 다 겪는구나. 미국 대학 캠퍼스 안에서 이루어진 4자회담, 참 별일 중의 별일이다.


finching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영문학 공부를 하는 '유일한' 이유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합니다. 건승하십셔.^^

08·01·14 23:47 삭제

laopassana 그렇겠죠? '그들'의 오해와 무지를 바로잡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우리의 기나긴 여정이겠죠. 에효, 근데 너무 멀어 보입니다아.. 말도 없어 다리도 아프고 노잣돈도 넉넉치 않아 배도 고프구요.^^;;

08·01·15 13:00  

wgblues it's very good for you to have such an open minded supevisor during your course work... generally (even if i don't like to stereo type academic people in england) here the english are incredibly conservative bunch of people so it is indeed rare to have such a fantastic '4 party talk' ... the so-called 'multiculturalism' is an academic humbug without serious political implications and practices ... hope your '4 party talk' will be developed towards real interculturalism with radical politics ... anyway it's new year once again, hope you have a memorable and lovely new year ...

08·01·15 22:46 삭제

laopassana 네, 형. 여기서도 아주 드문 경우죠. 그런 분이 개설한 이런 수업에서 외국학생들이 여럿 수강하는 경우는 다시 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네요. 운이 좋았다고 해야겠죠. 부디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동반자적 관계가 되길 희망합니다만, 말이 서툴러서 시간이 좀 많이 걸릴 듯하네요...^^;; 어서 감기 떨쳐내시고 건강한 몸과 마음으로 논문 일필휘지하시여욥~!

08·01·16 10:54  

     
  fiasco? [544]  laopassana 08·01·30 33730
  工夫  laopassana 08·01·12 1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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