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yal Wedding and Mr. Lee
 laopassana  | 2011·04·30 09:33 | HIT : 3,827 | VOTE : 405 |
어제 목요일 기점으로 공식적인 수업은 종료되었으나, 실질적인 방학을 온몸으로 맞이하기 위해 몇가지 일이 아직 남아있다. 수강하고 있는 대학원 수업 페이퍼 제출과 학생들의 마지막 과제물 채점 및 최종성적 입력 등을 마무리지으려면 1주일 정도 시간이 더 필요하지만, 오늘은 더 이상 정해진 시간에 등교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에 늦잠으로 하루를 시작해 안부 전화, 인터넷 서핑, 요리, 낮잠 등등 하루 종일 농땡이 모드로 지내다 여기까지 오게 됐다. 아마도 막 낙서를 하고싶어서인 듯하다.


Royal Wedding: 새벽에 일어나 평소와는 다르게 텔레비젼을 켰는데, 모든 공중파를 포함 CNN 등의 방송사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영국 윌리엄 왕자와 케이트 미들턴의 결혼식을 똑같이 생중계를 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신부가 아마 미국인이라 그런건가, 하고 잠시 생각했다가 (나중에 영국국적임을 알게됐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지금 때가 어느 땐데, '왕실' 운운하며 결혼식을, 수십억에 가까운 돈을 말 그대로 '뿌려가며' 생중계를 한다는 사실에 터져나오는 실소를 막을 수가 없었다. 캐스터들의 중계태도나 실시간 올라오는 시청자들의 즉각적인 이메일의 내용은 놀랍게도 한결같이 이 '전통'을 가장한 철저히 계급적이고 노골적으로 신분차별적인 '중세'스타일의 결혼식을 아름답고, 갖고 싶은 그 무엇으로 묘사를 하더라니. 의회와 왕실이 공존하는 영국역사의 복잡한 속내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정말 아무 일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왕자'의 자리에 오른 어떤 남자와 한번의 결혼을 통해 느닷없이 '왕자빈'이 된 한 여자의 결혼식을 지금 여기서 채널 선택권까지 몽땅 빼앗겨 가며 지켜봐야 하는 것인지, 우림 지금 민주와 평등을 이야기하는 시대에 살고 있기는 한 건지 심히 궁금해지며 반복적으로 터져나오는 한 마디, "지금 나랑 장난쳐?"


Mr. Lee: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공식적으로 불리는 내 이름이기도 하면서, 마지막 과제 에세이에서 가장 많이 읽히기도 하는 등장인물. 최종 에세이의 주제는 '이 수업을 통해 발전했거나 새롭게 깨닫게 된 부분들'에 대한 일종의 짧은 회고문 혹은 성찰적 에세이인데, 지난 학기에 비해 유독 "Mr. Lee" 가 눈에 많이 띄어 자세히 읽어보니, 맥락이 사뭇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번 학기엔 강의계획서에 전반적으로 내 목소리와 생각이 많이 반영된 관계로, 내가 자신있어 하거나 하고 싶어 했던 주제나 장르의 글쓰기를 많이 이야기했더랬다. 다만 본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주로 별 반응없이 듣고 있는 것으로만 보여 면벽수행하듯 좌절하다시피 이야기할 때까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그런지 수업 전엔 항상 나 조차도 긴가민가 하며, 할까 말까를 여러 번 망설이기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도 이야기 화제로 꺼려하는 인종차별, 백인우월주의, 이민법, 양성평등, 성적소수자 결혼합법화 등의 말 그대로 '핫토픽'을 수업시간에 꺼내들고서는, 1-2학년이 주를 이룬 학생들에게, 어떻게든 글쓰기의 주제로 은근슬쩍 권유하고 추천하기 위해 혼자 북과 장구를 모두 쳐야 했으니 말이다. 최초에 실러버스를 작성하며 얼마나 현실화시킬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었는데, 상당한 학생들이 마지막 에세이를 통해 수업 전반적인 구성과 지속적으로 '금지'된 주제를 이야기해 온 내 '용기'에 대해 꽤 우호적인 박수를 보내주었다, 이제껏 자신의 이론과 논리가, 혹은 그런 자신 자체가 잘못된 것으로만 알았었는데, 이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됐다며. 학점 업그레이를 위한 아부성 혹은 마무리성 발언이 아닌 진심어린 고백임을 깨닫게 되니, 굉장히 뿌듯하기도 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발언 하나 하나에 더더욱 신중해야겠다는 부담감도 갖게 된 듯싶다. 그러나 어쨌든, 이를 통해, 좀 현실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 아마도 처음으로 이 길에 들어서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 것은 확실하다. 영향을 주고, 변화를 이끌어내며, 연대하고 유대할 수 있는, 조용히, 하지만 그 무엇보다 효과적으로, 그리고 오래도록.  


홍석균 어릴적 우리가 영향 받았던 분들에게서 느꼈던 용기를 실천하고 있는 듯 하여 뿌듯하구나. 나역시 "무언가" 하고는 있지만 변화, 용기, 영향.... 뭐 이런 단어들하고는 거리가 먼 듯 하구나. 영국 회사이다 보니 금주의 사람들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왕실 결혼과 김연아를 벗어나지 못함에 나역시 실소를 금하지 못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 듯 하구나. 이제는 그러한 주제들이 회자됨에 있어 "그래서 뭐?"라고 반문할 사람들이 세대를 막론하고 그리 많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뭐라니? 대단하지 않아? 부럽지 않아?등등의 반응들이 100% 되돌아 오기 때문이다. 명진스님이 책을 한권 냈단다. 이름이 사춘기 이런 제목이었던 것 같던데. 인터뷰에서 이런말을 하더구나. "사춘기 적에, 왜 사람은 살까? 우주의 끝은 어디에 있을까? 죽으면 어찌될 까? "등등의 궁금증들을 가지게 된다고... 이런게 없으면 그사람은 사춘기를 겪지 못한 것이라고... 또한 이런 물음들을 죽을 때까지 가져가는 것이 수도자이고 그래서 나는 계속 사춘기라고....
학생들이 Mr. Lee에 대한 에세이가 많아질 수록 너의 "목적"에 다가가는게 아닐까 싶다.

11·05·03 00:48 삭제

laopassana 결혼식 사회는 잘 봤어? 오랜만에 이곳에서 보니 반갑네. 댓글은 나중에...^^;;

11·05·03 11:36  

laopassana 아주 먼 옛날 내게 헤세와 민중사를 이야기해주던 네게 장문의 격려 메시지를 받으니 감회가 남다른 걸.^^;; 이제 회사에선 빈 라덴 사망의 구체적 과정이나 사망 사진 공개 논란, 지난 영국런던 폭탄 테러 희생자들의 반응 등등 뭐 이런 것들이 대화의 주제가 되려나? 헤세가 전하고자 했던 성장통의 비밀은 여전히 입시와 취업이라는 화두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듯하고, 보통 사람들이 민중사라는 말에 익숙해지려면 한참의 시간이 더 필요한 듯해 기분이 썩 좋진 않지만, 구체적인 희망을 가지고 오늘도 이렇게 뭐 살아가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 싶다.

최근에 내린 어렵고 중대한 결정, 너도 잘 구체화시키길 바라마~!

11·05·05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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