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말모드
 laopassana  | 2011·04·20 08:21 | HIT : 2,231 | VOTE : 437 |
일찌감치 채점해서 돌려줘야 할 학생들의 페이퍼가 쌓이고 쌓여 오늘에 이르니, 한 두명씩 (터져 나오는 불만을 애써 참으며) 언제 돌려줄 계획인지 정중한 낯빛으로 물어온다. 지난 학기에 비하면 학생 수도 훨씬 적은데다가 장기결석으로 학점을 입력할 수 없는 학생이 두 명이나 되는데도, 채점은 정말 하기싫은 과업 중의 하나다. 종강이 다음주로 다가왔으니, 별 수 없이 으쌰으쌰해가며 처리하긴 할 텐데, 강의평가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지 조금 궁금해진다.

최근 [타자이론]이라는 수업을 들으며 제출한 서너페이지 분량의 소논문 계획서에 대한 담당교수의 평가와 반응이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유학 이후 처음이지 싶은  '수위'여서 여러가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학문적인 교감 및 세계관의 공유라는 '동지'의식(너무 옛스러운 단언데, 다른 말이 당장 떠오르지 않는구나. 날이 갈수로 현저히 추락하고 있는 모어구사력!)과 같은 추상적인 문제서부터 약간의 성취감과 부담감이 녹아들어갈 최종페이퍼 작성이나 논문지도/심사 위원회 구성원 계획과 같은 현실적인 부분들까지.

저 옛날 학부시절 '오늘만' 살고 있던 내게 대학원 진학이라는 또 다른 내일이 내 일이 될 수도 있음을 알려 준 최초의 계기, [영문학사] 담당 선생님의 예상치 못한 '호명'도 오버랩된다. 그러고 보니, 이 최초의 계기로부터 딱 십년이 흘렀다. 호, 십년이라!  

수업 덕에 '타자이론'의 조상이라 불리는 헤겔 옹의 [정신현상학]을 읽으며, 어렸을 적 이해하지 못해 판독만 했던 부분들이 다소 명료하게 읽히기 시작했다. 오래(?) 살아 연륜이 쌓여 그런 것인지, 아님 세미나를 통해 읽게 돼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변증법'과 '사적 유물론' 두 가지로 '헤겔'을 '해결'했다고 믿었던 이십대의 자신이 조금 부끄러워지면서, 그의 거대한 상상력과 치밀한 사유력에 놀라움과 감탄을 금하지 못하고 있는 중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엔, 극복되어야 할 위험하고 비극적인 철학임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로서는.

부담 반, 기대 반의 기말 속앓이... 이~주 후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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