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선언서를 추억하며?
 laopassana  | 2009·07·04 12:52 | HIT : 5,658 | VOTE : 328 |
내일 하루 모든 버스이용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는 무슨 날인가 달력을 살펴 보았다. 토요일 7월 4일은 미국 독립선언일 공휴일이라 적혀있다. 그러고 보니 작년 이맘 땐 한국에 있었으므로 이번이 내겐 미국에서 처음 맞는 독립기념일인 셈이다. 남의 나라 독립절에 무엇을 어떻게 하고자 할 계획이나 의욕 같은 것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여기저기서 들려오는 축하 불꽃놀이 일정 안내 방송과 각종 행사소식을 접하고 있자니 여러 생각이 달려들어 몇 자 끼적여 본다.

1776년 본국 영국의 식민정책에 맞서 전쟁을 벌이던 중 작성되고 식민지 각주 대표들에 의해 서명된 미국 독립선언문 서두에는 초등학생, 아니 유치원생들도 알만한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났다” 라든가 “인간은 창조주로부터 생명권, 자유와 행복 추구권 등의 양도 불가능한 권리를 부여받았다” 등의 유명한 문구들이 등장한다. 선언문이 천명된 후 본국과의 전쟁은 본격적인 혁명전 또는 독립전쟁으로 격상되었고 결국 영국의 항복선언을 이끌어 낸 신생국가 미국은 100년 뒤 프랑스로부터 독립선언일 축하와 기념의 의미로 문자 그대로 거대한 자유의 여신상을 선물로 건네받는다. 이후 독립선언문과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과 미국이 추구하고자 하는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알려졌고 미국하면 떠오르는 자동 연상어로 작용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우게 된다.

미국의 독립전쟁을 일컬어 혹자는 세계사적으로 위대하다 할 혁명이라 상찬을 아끼지 않는가 하면 또 다른 어떤 이는 진정한 민주주의는 미국의 독립선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리하여 이 둘은 그간 우리가 익히 들어왔으며 그렇다고 여겨왔던 오랜 진술이자 주장의 하나로 굳어졌고 그렇게 공고한 사실처럼 통용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과연 미국 민주주의의 주춧돌이라 참칭되는, 또는 자유의 여신상이 대변하고자 하는 그 자유와 평등이 온전히 모든 인간들에게 동일하게 수혜되고 추구되고 있는 가치인지 곰곰이 되짚어 본다면 이 구호가 얼마나 공허하고 추상적인 레토릭에 불과한지 이내 깨닫게 될 것이다.

독립선언문에 등장하는 “모든 인간”은 문자 그대로의 “모든” 인간이 아닌, 당시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에 나름대로의 기득권을 향유하고 있거나 이권에 개입되어 있었던 일부 백인 남성 청교도 행정 고위 관료들과 관련된 사람들로 한정될 뿐이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자손손 삶을 영위하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과, 아프리카에서 건너 온 흑인 노예들은 “모든 인간”에서 제외되고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를 추구할 권리를 박탈당했다는 점이 일단 지적되어야 할 것이다.

전폭적이고도 충실한 원주민들의 지원과 마음 씀씀이 덕에 낯선 환경에 최대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던 청교도를 비롯한 식민지 정착민들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이후 “인간”으로 볼 수 없는 원주민들을 무참히 그러나 빠른 속도로 학살하며 서부로 정치적 영토를 확장해 갔으며, 역시 “모든 인간”에서 제외된 흑인 노예들의 무임금 노동력, 그리고 아시아 및 다른 나라 이민자들의 저임금 노동력 착취를 발판으로 신생국 미국은 경제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 나갔다. 말하자면 인간도 아닌 그렇다고 동물도 아닌 원주민들과 흑인들의 도움과 희생을 논하지 않고 미국의 역사와 민주주의를 입에 올리는 것은 참으로 괴이하고 파렴치한 일일 것인데 지금 이곳에서는 그들의 존재와 실체가 누락된 채 역사가 논의되고 또 그 역사가 전부인 양 교육되고 전달되고 있다.  

신대륙 발견 당시 6천만 명 가량 되던 원주민들은 계속되는 일부 백인들의 무자비한 살육으로 현재 약 2백만 명으로 줄어들었고, 이러한 만행과 참상을 겪으며 그들은 주로 원주민 보호구역 혹은 화려한 도심지나 인구 밀집지역에서 멀리 떨어진 남루한 곳에서 연명하듯 하루하루를 초라하게 지내고 있다. 흑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노예 해방이 이루어진 지 한참에 한참을 지난 1954년에서야 흑백 공교육 통합 정책 시행령이 발효되어 이때부터 ‘형식적’으로나마 흑인과 백인이 같은 학교 같은 교실에서 똑같은 교육을 받을 수 있기 시작했다. 물론 이 제도가 제대로 시행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과 희생자들을 필요로 했다. 비슷한 시기 로자 파크스의 용기있는 저항으로 촉발되고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죽음으로 완성된 민권운동이 없었더라면 어쩌면 최근까지도 흑인들은 식수 조차 다른 곳에서 따로 마셔야 하고 인도에서 마음 놓고 걸어다닐 수도 없었을 것이며 버스에서는 좌석에 앉는 것이 금지되었을지도 모른다.

아주 먼 이야기가 아니다. 불과 4-50년 전만 하더라도 미국에서는, 민주주의의 고도의 상징이라 일컬어지는 미국에서는 “양도할 수 없는 생명, 자유, 행복 추구권”은 “태초”에 이들에게 부여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도 허용되지 않았다.

만인평등과 주권재민을 기초로 현대 대부분의 국가체제가 선택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처럼 처음부터 예외없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사실명제를 의미하지도 또 그렇게 작용하지도 않았다. 선언을 기초하고 다시 그 선언을 법제화 하는 데 실제적인 영향력을 끼친 일단의 사람들에게만 용인되고 향유되었기 때문에 이는 지극히 추상적이고 자의적일 수밖에 없는 가치명제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예외없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소박하고 단순한 구호를 상식이자 사실로 만들기 위해 소요된 시간과 치러진 희생을 상기해 보자. 선사시대를 제외하고도 황제와 왕들의 시대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절대 권력 아래 셀 수 없는 희생자들이 스러져갔다.

그 오랜 시간 인간은 자신이 동물과 다르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그렇게 살아 냈고 또 다시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현실에서는 물리적인 힘을 가진 이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다양하게 규제하고 배제할 법안을 기초하기도 하고, 자유와 평등이 지닌 의미를 앞다투어 정의하려 하기도 한다. 토니 모리슨의 말대로, 무언가를 규정하고 정의하는 일은 규정하고 정의하는 자들에게 귀속될 뿐, 규정당하고 정의당하는 이들에게는 해당사항이 영영 없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직도 우리는 정치경제적인 힘을 바탕으로 사회와 사람사이를 질서 지우려는 인간정글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도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리라.

어떤 면에서 보면, 유시민이 말하는 “후불제 민주주의”는 한국에서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의 본산지라 여겨지는 서유럽이나 미국에서도 동일하게 적용 가능할 개념이 아닌가 싶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민주주의는 여느 선언문에서처럼 생래적으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정정도의 지각작용을 거치며 일상적인 노력과 투쟁을 통해-물론 이 노력과 투쟁에는 일정정도의 희생을 담보로 한다- 성취되고 확보되는 것일 테니. 실질적이고 공평무사한 자유와 평등이 언제쯤 가능해질지 가늠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일이지만, 최소한, 어느 선언문에서처럼 모든 인간이 동등한 자유를 누리고 있다는 빤한 거짓말은 삼가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의문이 어느 나라의 독립기념일에 불현듯 떠오른다.


finching 미국의 독립기념일은 이젠 거의 폭죽놀이와 바베큐로 수렴되는 것같던데요.^^ 모든 인간이 '날때부터'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선언'을 하는가 아닌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힘'과 '노력'으로 그런 선언의 내용을 쟁취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원래 그러해야 하는 것'이라는 보편적인 명분을 놓아버리면 이 모든 것이 진리의 문제가 아닌 '힘'의 관계로 되어버리니까요. 그리고 그렇게 선언을 일단 해 놓아야, 그것이 '거짓말'이 되어버린 상황을 지적하고 개선할 명분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아직 이 세상 어느 곳에서도 실현되지 못한 프랑스 혁명의 구호나 미국 독립선언의 '선언'이 중요한 이유일 듯. 즐거운 휴일 보내시랍.^^

09·07·04 16:12 삭제

laopassana 네, 머릿 속에 든 생각을 입 밖으로 꺼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어려운 실천적 행위일 테니 선언 자체가 갖는 의의는 분명 클 수 있겠지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선언이 선언하고자 하는 보편적 명분이 지향하고 있는 개별적이고 특수한 의도나, 혹은 그 보편적 명분이 놓치고 있는 또다른 보편적 명분이 아닐까 합니다. 보편적 진리, 꺼내오기까지도 어렵고 훼손불가능한 상태로 확립하기까지도 참 처절하도록 힘든 일인 듯합니다.

운송수단이 없는 저로선 여기저기 이동하는 것이 불가능한 토요일이 될 것이라, 조용히 집에 머물며 제 맛을 그리는 능력을 십분 활용하여 미각으로나마 한가닥의 즐거움을 만끽해야겠습니다.^^

09·07·04 2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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