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텀 페이퍼가 일단락된 학기의 한복판에서 페일 에일을 마시며 꿀맛 같은 휴식을 취했다. 한주일의 시작을 알리는 월요일을 코 앞에 둔 일요일 저녁, 특박을 보내고 곧 부대복귀를 앞둔 이등병의 복잡한 속내와 혼잣말이 훤하게 보이며 들린다. 자원입대한 녀석 주제에 무슨 말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어진다.;;;
요리 기술(요리 실력이라고 말하기엔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책에서 시키는 대로 움직인 일종의 로봇이 만든 것이기 때문)은 조금 진보하여 나 말고 실제 다른 사람의 입에도 상당한 만족감을 줄 수 있게 되었다. 제법 괜찮은 입맛을 가진 사람의 입에도 괜찮게 여겨진다는 평가를 듣고 나니, 실력과 그 말의 진의 여부를 떠나, 그냥 기분이 좋아진다. 아, "이 맛에 요리를 하는구나"의 맥락과 참뜻을 파악하게 되는 순간.
---------메뉴를 닭도리탕으로 결정한 터라, 아니 할 줄 아는 제대로 된 일품요리가 아직은 요거 하나라 어쩔 수 없이, 소주가 절실히 필요했는데 손님이 어렵게 한 병 가져오기로 해 아주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정말로 더 걱정됐던 것은, 그 플라스틱 소주는 대략 5잔이 조금 넘는 양이라, 혹시라도 (당연히!) 모자르게 될 경우 그 아쉬움을 과연 무엇으로 달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었다.
그런데,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고민이 한방에 해결되고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한국담배를 보내달라고 얼마 전 부탁을 해놓은 상태였는데 공교롭게도 이날 소포가 도착한 것이었다. 저녁 무렵 장을 보고 돌아와 기분좋게 열어 본 상자 안에는 예상했던 담배와 더불어 약간의 과자와 플라스틱 소주, '참이슬 프레쉬 2병'이 그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누워 있는 것 아닌가!
역시 예상대로 닭도리탕의 '기막힌' 맛과 저녁 자리의 한국적 분위기를 감당하기엔 플라스틱 소주 1병은 역부족이었다. 기분좋은 드라마를 연출해 준 NERV에게 이자리를 빌어 무한감사~!^^;;-------------
날은 점점 추워져 건너집 교회의 창문이 꼭꼭 닫히게 돼 소음테러와의 전쟁이 아주 싱겁게 끝나버렸다. 가끔 혹시 교회에 무슨 일이 생겼나 궁금해하기도 하는 이상한 나를 발견하지만, 이와 동시에 여름이 돌아오면 다시 시작될 그 드럼소리를 떠올리니 아찔한 한숨이 절로 나온다. 조삼모사가 따로 없구나...
아래층 소음의 장본인에게 초반에 사과를 받아 냈지만, 자신의 상위 1퍼센트에 들고도 모자람이 없는 그 테너급 보이스 데시벨을 여전히 조절하지 않고 있는 녀석 때문에 가끔 잠에서도 깨고 같은 책의 같은 문장을 반복해서 읽게 되는 웃지 못할 촌극이 계속되고 있다. 방을 옮기고 나서 훨씬 나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안 좋은 감정은 계속 쌓이고 쌓여 결국 학교에서 마주친 순간, 그것은 안면몰수로 표면화되고 말았다. 먼저 인사를 걸어 왔으면 자연스럽게 인사를 할 수 있었으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먼저 인사를 해야 했었는데, 정말로 입이 딱 붙어서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평상시 내 속에 있는 욕을 많이 들어서인지 그 녀석도 표정이 썩 밝아 보이진 않았고. 어쩌냐, 밤새 아무 거리낌 없이 통화하는 자네의 무매너와 하이 보이스를 탓해야지, 나를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짧은 중간 페이퍼와 파이널급 중간 페이퍼 하나를 작성하며 절감한 유치찬란하다 못해 구리고 구렸던 숱한 영어표현들. 당장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므로 저으기 우울해진다. 여기와서 영어를 새롭게 배우는 사람들이 많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이 역시 자원입대이기 때문에 어디 누구를 탓할 수는 없는 노릇이 분명.
뭐, 별거 있나, 첫 학기가 한창이고 남은 학기 푸르고 또 푸를 터인데, 그냥, 공~부하세요~!
